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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13-12-23 밤

오늘은 아버지의 퇴임식이었다. 축사를 하게 될 줄 알았는데, 가족이 축사를 하는 시간은 없어서 하지 못했다. 그래도 할걸.. 아쉬운 마음에 여기에 써본다. 축사에 퇴임식 끝나고 느낀 소감까지 들어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축사를 마음속으로만 준비하고 있었고 이미 끝나고 난 뒤니까..


 안녕하세요. 아들 안준형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초등학교일 적부터 이미 건강보험공단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지껏 직접 알고 있는 아버지의 유일한 직장입니다. 저에게도 이렇게나 오랫동안 보아온 직장인데,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긴 세월동안 이 곳에서 일하셨을지, 아마 훨씬 길게 느끼시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그 시간동안 어떻게 아버지라고 고민이나 시련이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는 내색하지 않으셨고, 오직 묵묵히 할 일을 하시는 줄로만 알았기에, 저는 오늘에서야 찬사받는 아버지의 뒤에서 여지껏 묵묵히 끌어오신, 아버지의 긴 그림자를 봅니다. 그리고 염치없게도 가지지 못했던 존경심을 가집니다. 항상 우리 아빠는 그저 평범한 아버지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홀로 빛나던 아버지를 지금 알았습니다. 이제서야 제가 한참 부족함을, 아버지께서 얼마나 끈질기게 그 빛을 얻어내셨는지, 끈기와 책임을 생각합니다. 아버지 정말로 존경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그만 물러나시는 것을 슬퍼하지 마세요. 누군가는 지금의 아버지를 보며, 인생의 정점에 서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여러개의 산이라면, 아버지께서는 마침내 높은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이니까요. 머리야 이미 새하얗게 새어서 검은 머리를 찾아보기가 힘들지만, 아마 눈이 덮힐 만큼 높은 산에 올라가 쌓인 눈이 아직도 머리에 앉아있나봅니다. 아니면 아예 흰 눈으로 물들어버렸는지도요. 저는 아버지께서 인생의 더 높은 산으로 다시금 오르기 시작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 산이 무슨 일이 되었든, 아니면 일이 아니라 자신 내면의 것이든 상관하지 않아요. 이전 같은 직책은 가질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여지껏 그래왔듯이 항상 끊임없이 앞으로 걸어가는 아버지셨기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멋지게 마무리를 했기에 새로운 시작을 더 당당하게 할 수 있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힘내세요 아버지!

 퇴임사를 들으며 얼굴이 뜨겁게 차올라 눈물을 정말 열심히 참았습니다. 아버지,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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