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

2020-12-20

 오랜만에 펜을 찾았다. 예전에 이것저것 그려보고 써본다며 화방에 가서 열심히 골라온 펜은 이제 집 어느 구석에 놓여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디 쓸만한 펜이 없나 열심히 뒤져보다가 그 펜을 다시 찾았다. 수묵화 수업에서 쓰던 종이들과 묵과 붓과 다른 잡동사니들을 모두 넣어놓은 수납함에서는 그 수업의 냄새가 아직도 났다. 그 냄새에서 그렇게 빠르게 기억이 떠오르는 것에 신기해하면서 괜히 더 맡아보다가 구석에 놓인 펜통을 찾았다. 굵기별로 6개가 가지런히 들어있어야하는 통에는 절반은 비었고 3개만, 굵기도 제 각각으로 남아있다. 종이에 대고 몇 자 써보니 생각보다 색이 흐릿하다. 분명히 예전에는 완전한 검정색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보니 어느정도 회색빛이다. 펜도 낡으면 색이 바래나? 내가 다른 펜을 착각하는건가하고 잠시 생각했는데 이 바랜 것 같은 색도 쓰기에 나쁘진 않다. 

 

 글씨는 예전보다 더 삐뚤빼뚤해졌다. 갈수록 못해지는 것에 글씨쓰기는 꼭 들어가야할 것 같다. 너무 못쓰면 아예 새로 써야되나 생각도 했는데 그래도 쓰다보니 읽을만은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그대로 주욱 썼다. 

 

 일기도 너무 오랜만에 쓰다보니 생각만 이리저리 떠다니고 도무지 글로 잡히지가 않는다. 아마 몇 번 더 쓰다보면 그래도 다시 익숙해지겠지. 몇 가지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을 어느 순간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어서 씁쓸한 느낌이 드는데, 무엇을 잃어버렸냐고 물으면 그 단어의 이름을 까먹어버린 것처럼 단정지어 말할 수가 없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흘려보내기  (0) 2021.09.11
기대 없애기  (0) 2020.12.28
2018-09-17  (0) 2018.09.17
2017-01-17  (0) 2017.01.17
2017-01-01  (0) 2017.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