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

슬픔을 사는 은행

 어느 날 마을에 슬픔을 사는 은행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슬픔을 사는 은행이라니.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은행 문을 두드렸고, 은행은 실제로 저마다의 슬픔에 대한 값을 치르고 그것을 샀다. 은행에서는 더 깊은 슬픔일수록 더 큰 값을 지불했다. 그에 대한 이상한, 심지어 가끔은 보상없이도 치르고 싶어하는 댓가로 슬퍼하던 사람은 그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은행이 왜 갑자기 슬픔을 사는 것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은행은 슬픔을 샀고,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돈을 벌었다. 누군가가 은행에 슬픔을 팔아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은행이 슬픔을 사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그는 하루종일 운다고 했다. 그는 슬픈 영화만 본다고 했다. 그는 일부러 이별한다고 했다. 우울한 표정만 짓고 있는다고 했다. 불행만 찾아다닌다고 했다. 그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떠돌았고, 그것을 실제로 따라하는 사람도 제법 생겨났다. 이 은행이 생겨난 이후부터, 가장 부자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었고, 가장 불쌍한 사람들도 순식간에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슬픈 이야기는 죄다 은행에 팔았고, 더 기구한 인생이 되도록 노력했다. 한동안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마침내 지구 상에서 쓸모도 없고 해만 되는 모기를 박멸하게 된 것처럼, 자기 감정의 쓸모없는 부분을 박멸하고, 오히려 유용하게 전환할 수 있게 됐다고.

 한동안 은행이 그렇게 사모은 슬픔들을 어떻게 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 그에 대한 몇 가지 추측들이 떠돌았는데, 그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영화 제작자가 슬픔을 사간다거나, 이별하고 싶은 연인이 사간다는 말들. 슬픔을 팔아서 부자가 되었다고 소문이 났었던 그 사람도 이제는 은행에서 슬픔을 산다는 말도 간간히 들려왔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Inglourious Basterds"를 보고  (0) 2016.07.02
글쓰기와 못된 습관  (2) 2016.07.02
2016-06-29  (0) 2016.06.29
2016-02-19  (0) 2016.02.19
2016-02-19  (0) 2016.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