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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길상사 가는 길

 아침엔 대단히 이상한 일이 있었고, 그것 때문인지 하루종일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간만에 길상사에 가기로 했다. 길상사에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옛날에 누가 처음으로 데려갔을 때 이후로 딱 한번 혼자 왔었는데, 그때부터 따지면 한 3년, 4년만에 가는 거려나. 출발하기 전에는 예전에 길상사에 갔었던 기억때문에 마음이 자꾸 착잡했는데, 막상 출발하고 나니 그만큼 착잡하진 않았다. 그냥 지하철에 타고 이런 저런 생각하면서, 마음 달래면서 있다보니 한성대 입구역에 도착했고, 거기서부터 길상사까지 걸어가는 것도 그렇게 오래걸리진 않았다. 가는 길에 해가 다 져버리면 어쩌나 꽤 걱정했었는데, 비가 와서 파란 빛은 없어도 다행히 구름 사이로 대충 흩어진 그런 햇빛들은 남아있었다.


 걸어가는 길은 의외로 재미있었다. 구불구불하고 좁은 길을 좋아하는데 가는 길이 전부 골목길은 아니지만 대부분 그런 구불구불한 길이었고, 그것도 아담한 건물들이나 산을 끼고 있어서 가는 내내 걷는 게 힘들지 않았다. 주황빛 가로등이 곳곳에 서있고 하루종일 비가 온 뒤라 산에는 물안개가 잔뜩 껴있었는데, 그런 공기 속으로 가로등 빛이 퍼지는 모습이 은은했다. 


 길상사 안에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길상사에 머무는 내내 스님 두분과 방문객 두어명 정도 본 것 같다. 오는 길엔 그래도 하늘이 어둡긴 했어도 해가 완전히 진 건 아니었는데, 절에 도착하니 해가 거의 다 져버려서 하늘은 비구름과 안개와 섞인 짙은 회색빛이 되어버렸다. 길상사 안에도 가로등이 몇 개 있었는데, 여기는 안개가 더 심해서 가로등 빛이 안개 속에 잡혀있는 것 같았다. 빛이 안개 사이로 숨구멍만 겨우 터서 숨 쉬고 있는 것처럼, 가로등 빛은 도무지 안개를 뚫고 나오지를 못했다. 난 도착해서는 그냥 계속 경내를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기만 했다. 옛날에 왔던 생각을 하면서 이곳 저곳에서 그 때 그 장소의 기억을 떠올려봤는데, 그땐 밝을 때 왔었고 지금은 너무 어두워서 그런지 기억이 잘 짜맞춰지지가 않았다. 한참 경내를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스님이 한분 지나가고, 그러고 또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또 한분 지나갔다. (사진을 찍어보려고 했지만 너무 어두워서 실패했다...) 공기 중에 떠돌던 빛도 사라지고 밤이 되자 산사에는 물소리만 남았다. 난간에 기대서 물소리를 듣다가, 그냥 젖은 계단에 앉아서 있다가, 조금 더 걷고 그만 산사에서 나왔다. (물소리도 좋아서 녹음해봤지만, 도저히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녹음이 되지가 않았다...)


 돌아올 때는 왔던 길로 그대로 돌아왔다. 이렇게 긴 거리를 걸을 때면, 갈 때 봤던 건물이 돌아오는 길에는 왠지 좀 더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드디어 다시 여기야! 조금만 더 걸어가면 돼." 하는 것 같은 느낌. 올라가는 길에 봐뒀던 빵집에 가서 빵을 샀는데, 직원분이 갑자기 자기가 만든 롤케익 먹어보라고 한입 주고 또 다른 직원분이랑 어쩌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나가기전에 조그만 소시지빵 하나를 더 주셨다. 가게 이름이 너무 예뻐서 간 곳이었는데 직원분들 마음씨도 곱다... 다음에 성북동에 올 일 있으면 또 가야지. 하하하.




출발하기 집에서. 이때는 비가와서 가서도 비오는 풍경을 찍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가고 나니까 찍기는 좀 그런 보슬비만 계속 내렸다.




한성대 입구 도착해서. 비구름때문에 하늘이 희뿌연 회색이다.




간판이 예뻐서 찍은 가게. 찍고 나니까 간판보다 뒤에 빨간 배경이 더 예쁜 것 같다. (찍고 있는데 가게 아주머니가 의아하게 쳐다보셔서 빨리 찍고 지나갔다...)




내가 바란 느낌은 이게 아닌데.. 뭔가 좀 더.. 있어보일 줄 알았는데 그냥 평범한 표지판 사진이 되어버렸다.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빵집! 사진은 올라갈 때 예뻐서 찍었다. 이름이 예쁘다. (직원분들도)




산사 가는 길. 가로등이 띄엄띄엄 있고 길도 적당히 구불구불해서 좋다.




가로등 나란히~




전깃줄이 막 얼기설기 늘어져 있길래 찍어보았다.




길상사 안에 있던 이름모르는 풀! 혼자 빛 받고 있는게 예쁘다.




극락전 전경. 요 흙마당 앞 계단에서 자세를 아주 아주 낮게해서 찍었다.




뭔지 모르는 건물. 그냥 혼자 조그맣게 불켜져 있는게 아담해서.




극락전 문 앞에서! 저 창호지 빛나는게 눈으로 보면 예쁜데.. 사진으로는 잘 못찍겠다.




조명이 예뻐서!




위에거 넓게 찍은거...




간판이 예뻐서! 낮술도 좋아하지만...




렌즈에 물방울이 많이 묻어서 옷으로 닦았더니.. 그 다음에 찍으니까 이렇게 빛이 다 번져버렸다. 번진 것도 나름대로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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